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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5 10:48

말(마지막)

조회 수 1325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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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무리 용기 있는 사람이어도 당신보다 파워 있는 사람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삭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뒤에서 누군가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을 뒤에서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뒤에서 한 말도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말은 그냥 돌아다니지 않고 돌고 돌면서 부풀어 올라 크게 변질 된다

 

뒷말이 무서운 것은 말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불평을 들어주며 "그건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 하며 맞장구치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마라.

그 사람이 당신 말을 듣는 동안에는 "절대 다른 데 옮기지 않을게" 라고 했을지라도 언제든 마음이 바뀌어 제3의 인물에게 "이 말을 전하지 않기로 했는데 너만 알고 있어"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밀을 지킬 수 없다.

사람은 약속을 깰 때는 양심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위해 말을 보탠다.

그래서 남의 말을 옮기는 사람들은 으레 "그 사람 뒷말이 많아서 못 쓰겠어"라는 토까지 단다.

그러니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라면 뒤에서도 하지 말라

뒤에서 한 말일수록 크게 부풀어 올라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타인에 대한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험담을 하는 사람,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 그리고 험담을 듣는 사람..

그러나 이 중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는 사람은 험담을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중학교 다니는 아들의 생일 선물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그의 앞에 술에 취한 듯한

어떤 노인이 곡예를 하듯 육교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 난간을 잡고 간신히 올라가는 노인의 모습이 너무 불안해 보였다.

만일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노인은 큰 변을 당할게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얼른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할아버지, 조심하셔야 돼요. 여기서 넘어지시면 큰일 나요."

"......................."

고개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한 노인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노인을 부축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을 부축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의 한 손엔 아들에게 줄 선물까지 들려 있었다.

간신히 육교의 계단을 올라가기는 했지만 내려가는 일이 더 난감했다.

노인은 이제 해면체처럼 풀어진 몸을 아버지에게 전부 의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노인의 팔을 자신의 목에 감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노인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지갑이 계단으로 떨어졌다.

아버지는 매우 난감했다. 허리를 숙여 지갑을 주워 보려 했지만 노인을 부축한 채로는 불가능 했다.

그는 앞서 걸어가고 있는 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학생, 나 좀 도와줘. 학생!"

차림새가 불량해 보이는 학생은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더 큰 목소리로 학생을 불렀다.

"학생,...여기 지갑 좀 주워 줘. 내가 주울 수가 없어서 그래."

이번에는 잠깐 얼굴은 돌렸지만 학생은 이내 다시 앞을 보며 관심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날카로운 눈매에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이었던 학생이 그는 욕이라도 해주고 싶을 만큼 괘씸했다.

다행히 뒤에 오던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떨어진 지갑을 주울 수 있었고, 노인도 무사히 육교를 건넜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일요일 오후, 아들의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왔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들 와라. 이렇게들 와줘서 고맙구나."

아버지와 그의 아내는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아들의 친구들 중 한명이 지난 밤, 집 앞 육교에서 보았던 바로 그 아이였던 것이다.

그 아이는 아버지를 보자 표정이 굳어졌다.

그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아이를 잠시 바라보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날 밤, 아버지는 아들의 방으로 갔다.

"영민아, 오늘 집에 온 친구들 다 같은 반이니?"

"같은 반 아이도 있고 학교가 다른 아이도 있어요. 왜요?"

"아니, 우리 영민이가 어떤 친구들 하고 지내나 궁금해서....사람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거든.

친구 잘못 사귀면 착한 사람도 결국은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말아."

"아빠, 제 친구들 모두 착해요. 공부도 잘하고요."

"그래? 근데 말이야 제일 나중에 온 친구는 어때?"

그는 육교에서 아무 말 없이 가버렸던 아이에 대해서 넌지시 물었다.

"재석이요? 걔가 공부 제일 잘해요."

"세상을 사는 데 공부 잘하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사람 됨됨이가 착해야지."

"아빠.....재석이 정말 착해요."

"사람이 겉만 보고는 모르는 거야."

아버지는 당장이라도 지난밤의 일을 아들에게 알려주어 그런 친구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 문제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재석이라는 애, 지금 너하고 같은 반이니?"

"아니오, 다른 학교 다녀요. 그런데 아빠, 재석이 너무 불쌍해요. 요 아래 육교 건너편에 사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거든요. 게다가 어릴 때 교통사고로 청각을 잃어서 들을 수가 없대요. 사람들이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 겨우 알아듣거든요."

아버지는 그제야 자신이 도움을 청했을 때 아이가 그냥 가버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날,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준 일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진실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껏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옳고 그름을 말해 왔다.

두 눈 부릅뜨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

-이철환의 '연탄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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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선 2010.06.25 14:43
    [말] 연재가 오늘로 마지막이네요~^^ 올려주시느라 애쓰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부터도 잘 지키지 못한 중요한 내용을 그동안 잘 읽으며, 말을 신중히 할 것이라고 다짐을 새롭게 새롭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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