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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10:13

미궁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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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새로운 부르심을 따라 자리를 이동한 지 5개월이 지나갑니다.

앞선 글들을 통해 여러 번 제가 집에서만 지내고 있음을 알렸기에 재차 언급하기 민망하지만, 제가 있는 지역은 최근 다시 급증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로 인해 잠시 활력을 찾았던 거리는 2주 만에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조용해졌습니다. 다음 차례는 성당 개방이었는데 말이죠. 언제쯤 성체를 직접 모실 수 있게 될까요.

저는 이곳에서 수녀님 네 분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산책을 제외하고는 바깥 외출 없이, 매일 우리끼리 얼굴을 맞대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내는 공동체 삶이 봉쇄 수도원 삶과 비슷할까요?’라는 저의 질문에 수녀님들의 옛날 추억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험악했던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제가 괜한 질문을 했나 싶네요.

최근 다음 학기 수업도 모두 인터넷으로 진행한다는 발표 후, 모두 곧 시작될 새 학기를 위한 준비에 바쁘십니다.

물론 이 상황이 금방 끝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만, ‘해결이 있는 걸까? 끝이 나긴 나는 걸까?’라는 두려운 마음에 또다시 휩싸입니다. 어떤 날은 걷잡을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와 저를 감싸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그동안 입으로는 매번 희망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나타나는 현실은 저를 자꾸 다른 길로 몰아치니 정신을 차려보면 막다른 곳에 벽을 보고 서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굉장히 부끄럽지만, 매번 다른 곳에 서 있네요.

주일마다 함께 만든 빵과 포도주를 두고 함께 전례를 합니다. 말씀을 함께 읽고 복음 묵상 나눔을 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넘습니다. 초기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이러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많은 것이 복잡하게 얽혔는데 해결 방법이 없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서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그런 기분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는데, 사실 하나도 모르겠어요.”

언어라는 것은 종종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 다른 의미로 전달되기도 하죠. 그것이 외국어일 경우는 더욱 난감합니다. 더듬대며 말을 이어가는 저를 유심히 보시던 한 수녀님께서 “혹시 미로 안에 있는 것 같은가? 괜찮아. 잠시 미로에 갇힌 거야. 우리 같이 갈 데가 생겼네”라고 하십니다.

“아니 뭐가 그렇게 힘들어? 지금 전 세계가 다 그렇잖아!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라며 다그치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여기 천천히 한번 걸어 봐”

며칠 뒤 도착한 곳은 미로가 설치된 주교좌성당 마당이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한참 걸릴 것 같았습니다. ‘가다가 막히면 어떻게 하나, 수녀님 기다리시는데 빨리 끝내야 할 텐데.’ 온갖 걱정을 뒤로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길은 중심 원을 향해 구불구불 흘러가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또 긴 원을 돌아 다시 중심 원을 향해 갑니다. 마치 닿을 듯 가까이 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멀어집니다.

가장 바깥에 위치한 길 위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수도자로서의 나를 잃어버리고 그냥 한 인간으로 남은, 민낯의 저를 마주합니다.

‘발을 옆으로 살짝 빼면 더 안 해도 되는데, 굳이 저 가운데 원까지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중심 원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걷습니다. 길은 그 후에도 중심 원에 닿았다 멀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 후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걸은 미로는 막힌 곳이 없었습니다. 단지 중심에서 멀리 도는 길만 있었을 뿐.

제가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길을 잘 따라가기만 한다면, 여기 왜 이러고 있는가 싶더라도 다음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수도자로서 제가 만들어 놓은 관념 안에 무한하신 하느님을 가두고 당위성만 남은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해되지 않는 희망만을 내세우며 하느님을 향한 길을 직선으로만 내려고 노력하다 좌절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 앞에 닥친 것이 내가 알고 계획한 것이 아니어서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내 앎을, 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 혹시 이것이 그분이 말씀하시는 겸손 아닐까요?

어디를 향해 걷고 계십니까?

한 번에 끝나지 않을 평생을 두고 걸을 여행의 길을 떠나신 그대여.

겸손이 없다면 저처럼 미궁에 빠지게 될 겁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8)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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