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
본당의 날 기념 성지순례
정해박해(1827년) 이후부터 피난교우들이 낙동강을 따라 나루가 있는 명례에 까지 모여 들었다. 1828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가 이곳 명례에서 출생하여 1866년 대구에서 순교하였다.
1886년 영남지방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대구본당의 주임 김보록 로베르 신부가 1887년부터 매년 명례를 방문하여 성사를 집행하면서 명레공소를 설립하였다. 1897년 명례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고 1898년 초에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관할구역은 밀양, 양산, 경주, 언양, 기장, 동래 일원이었다. 본당 승격 소식을 접한 명례 교우들이 현 위치에 120냥을 주고 세 칸 짜리 집을 구입했다.
강 신부 선종(1903년) 이후 명례본당은 마산본당(완월동)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26년 '재건 명례본당'이 설립되고, 갓 서품된 권영조 마르코 신부가 2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1928년 기와로 된 성당을 봉헌하였다. 이 성전은 1935년 태풍으로 전파되었다. 현재의 성전 건물은 1938년 축소하여 지은 것이다. 1930년 권 신부는 본당을 교통의 중심지인 삼량진으로 옮겼고, 명례본당은 삼량진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1935년에는 진영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1996년에는 수산에 본당이 신설되면서 명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되었다.
2008년 명례성지 조성 추진위원회를 마산교구에서 승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