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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교구장 주교님께서는 올해의 사목방향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담화문에서 박노해라는 시인의 "이스탄불의 어린사제"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의 의미와 이 성체를 영하는 신앙인들의 삶의 태도라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돌이켜 보는 오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저는 "이스탄불의 어린사제"라는 이 시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해 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를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폭설이 쏟아져 내리는 이스탄불 밤거리에서 / 커다란 구두통을 맨 아이를 만났다 / 야곱은 집도 나라도 말글도 빼앗긴 채 / 하카리에서 강제이주당한 쿠르드 소년이었다 /

오늘은 눈 때문에 일도 공치고 밥도 굶었다며 / 진눈깨비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 작은 어깨를 으쓱한다 / 나는 선 채로 젖은 구두를 닦은 뒤 / 뭐가 젤 먹고 싶냐고 물었다 / 야곱은 전구알같이 커진 눈으로 / 한참을 쳐다보더니 빅맥, 빅맥이요! / 눈부신 맥도날드 유리창을 가리킨다 /

학교도 못 가고 날마다 이 거리를 헤매면서 / 유리창 밖에서 얼마나 빅맥이 먹고 싶었을까 / 나는 처음으로 맥도날드 자동문 안으로 들어섰다 / 야곱은 커다란 햄버거를 굶주린 사자새끼처럼 덥썩 물어 삼키다 말고 나에게 내밀었다 /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물었다 / 세입쯤 먹었을까 /

야곱은 남은 햄버거를 슬쩍 감추더니 / 다 먹었다며 그만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 창밖에는 흰 눈을 머리에 쓴 / 대여섯 살 소녀와 아이들이 유리에 바짝 붙어 / 뚫어져라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

야곱은 앞으로 만날 때마다 / 아홉 번 공짜로 구두를 닦아주겠다며 / 까만 새끼손가락을 걸며 환하게 웃더니 / 아이들을 데리고 길 건너 골목길로 뛰어들어갔다 /

아,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 어두운 골목길에서 몰래 남긴 햄버거를 / 손으로 떼어 어린 동생들에게 / 한입 한입 넣어주는 야곱의 모습을 /

이스탄불의 풍요와 여행자들의 낭만이 흐르는 / 눈 내리는 까페 거리의 어둑한 뒷골목에서 / 나라 뺏긴 쿠르드의 눈물과 가난과 / 의지와 희망을 영성체처럼 / 한입 한입 떼어 지성스레 넣어주는 / 쿠르드의 어린 사제 야곱의 모습을 /

 

 

그리스도의 성체를 영하는 우리 자신들의 시선과 관심이 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아울러 성체를 영하는 신앙인이라 자부하는 우리 자신들의 몸과 마음이 주로 어떤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고 싶습니다.

나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이들, 나와 크고 작은 이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들, 나의 이득을 크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이들에게 우리 자신들의 시선과 관심이 주로 향하고 몸과 마음이 주로 그들과 함께 한다면, 그리스도의 성체는 그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밀전병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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