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아기예수님을 만납니다.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설득력있는 해석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자 또는 점성술가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동방에서 왔다라는 이 사람들과 아기예수님의 만남에 대하여 이탈리아 라벤나의 주교 크리솔로고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동방 박사들은 그들이 뭇 별들 가운데 빛나는 별처럼 찾았던 그분이 구유에서 울고 계신 것을 찾아냅니다. 오늘 동방 박사들은 그 전에 별들 가운데 희미하게 보였던 그분이 환히 나타나 포대기에 싸여 계신 것을 봅니다. 오늘, 동방 박사들은 자신들 앞에 누워 계신 신비를 바라보고 몹시 놀랐습니다. 땅에서 하늘을, 하늘에서 땅을, 하느님 안에서 사람을,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또 온 우주가 담을 수 없는 그분이 어린아기의 작은 육신 안에 들어가 계신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어린아기를 보고 나서 의심을 품지 않고 그를 믿으며, 그 믿음을 세 가지 상징적 선물로 보여 주고, 유향으로 하느님을, 황금으로 임금님을, 몰약으로 죽음의 운명에 놓여 있는 사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오늘, 맨 끝이었던 이방인은 맨 첫째가 되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신앙으로부터 이방인들의 신앙이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인 동방박사들을 아기예수님께 이끈 것은 그들이 품었던 "호기심"이었습니다.
옛 예언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끌게 될 통치자가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이 그들을 아기예수님께로 이끕니다.
그리고 이 호기심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신앙의 내용을 알아듣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는 이 신앙의 내용에 대하여 의심을 품지 않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구체적인 행위, 즉 세 가지 상징적인 선물을 통하여 드러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을 모르는 이 이방인들의 신앙고백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지금 우리들의 신앙이 비롯되어집니다.
동방 박사들이라고 불리우는 이들과 아기예수님의 만남에서 엿볼 수 있는 이 내용들을 요약해 보자면, 호기심이라는 것이 신앙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이 신앙의 내용은 믿음을 가져오며, 이 믿음은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우리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이 동방 박사들의 신앙으로부터 이방인들, 즉 우리들의 신앙이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인 동방 박사들이 아기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들을 아기예수님에게로 이끈 것은 "호기심"이었고, 이 호기심이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내용들을 알려주었으며, 이 신앙의 내용들에 대한 그들의 고백이 마침내 그들을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호기심 없이 신앙인이 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신앙인이라 불리우고 있는 자라 하더라도 그가 더 이상 하느님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 않고, 하느님에 관한 것들에 대하여 더 알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신앙인이다"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가짜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이 신앙하는 하느님은 죽은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느님입니다. 바로 이 살아있는 하느님에 대하여 더 이상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 신앙인은 살아있는 신앙인이 아니라 죽은 신앙인입니다. 그리고 죽은 신앙인이 신앙 할 수 있는 하느님은 죽은 하느님이며 살아있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따라서 살아있는 하느님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하느님을 살아있는 방식으로 신앙하는 자가 바로 살아있는 신앙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