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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13:56

거룩한 표징 -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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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성당 문을 드나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문으로 들어갈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을까. 문이란 도대체 무엇하러 있는 것일까.

 

  무슨 말을 그렇게 묻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이야 물론 드나들라고 있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야 그렇다. 하지만 드나드는 데 구태여 문이 있어야 할 것도 없다. 벽에다 큼직한 구멍을 하나 내면 될 일이고, 여닫는 것은 든든한 빗장을 하나 내면 될 일이고, 여닫는 것은 든든한 빗장을 하나 꽂고 판대기나 갖다 대면 알될 것도 없다. 그래 놓으면 사람들 드나들기에도 편하고 값도 적게 먹히고 실용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걸 "문"이라 일컬을 수는 물론 없다. 문이란 그저 쓸모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문 나름으로의 말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문턱을 넘을 때 우리는 바깥으로서부터 안으로 들어온다. 바깥에는 세상이 있다. 아름답고 생동하고 창작하는 세상이다. 거기에는 또 추악하고 저속한 것도 있다. 어수선한 장터처럼 제가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붐비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스럽지 못한 곳으로 여기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문을 지나면서 장터와는 분별된 조용하고 축성된 내부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는 성소(聖所)이다. 물론 천하만물이 하느님의 업적이며 선물임에는 틀림없다. 하느님은 어디서나 우리를 대해주실 수 있다. 또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 손에서 받아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축성해야 한다. 그런 줄 알면서도 하느님께 따로 축별(祝別)된 곳이 있음을 아울러 의식해 왔다.

 

 문은 바깥과 안 사이에, 장터와 성역, 세속 것과 하느님께 축성된 것 사이에 가로놓여 있다. 하여 우리가 그 문을 지날 때면 "이 안에 속하지 않는 것은 생각, 소원, 근심, 호기심, 허영 할 것 없이 모두 밖에 놓아두고 들어오시오. 성역에 들어오는만큼 자신을 정화하시오" 하고 말해준다.

 

  문을 부산하게 지나가서는 안되겠다. 침착한 걸음으로, 마음의 귀를 기울여 이 말에 유의하면서 들어가기로 하자. 아예 들어가기 전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 우리의 몇 발짝 걸음이 정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게 하면 더욱 좋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을 일단 들어서면 절로 고개를 들게 되고 눈길이 위로 간다. 앞으로 길게 높이 트인 시원한 공간을 시선이 따라 올라가면서 가슴속도 아울러 넓어지는 느낌이다. 성당 안의 높이 솟은 공간은 무한한 영원과 하느님이 머무시는 하늘을 모방하는 것이다. 산들도 그보다는 훨씬 높고 그 위의 푸른 하늘도 끝없이 높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이렇다할 형태도 한계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 곧게 솟은 기둥, 넓고 튼튼한 벽을 보면서 우리는 마음으로 "그렇지. 여기가 하느님 계시는 집이지" 하고 따로 느끼게 된다.

 

  성당 문은 인간을 바로 이런 신비로 이끌어준다. "옹색하고 초조한 생각은 말끔히 버리시오. 우울한 느낌도 잊으시오. 가슴을 활짝 펴고 눈을 맑게 뜨고 마음을 푸시오. 여기는 하느님의 성전이고 또 당신의 모상이오. 그것은 당신이 몸, 마음 할 것 없이 하느님의 산 성전인 까닭이오. 당신의 그 성전도 활짝 열고 해방시켜 들어높이시오" 하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문들아 일어서라. 영원한 문들아 열려라. 영광의 왕께서 듭신다"고 성영(聖靈)은 부른다.

 

 

  이 부름을 듣자.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산 거처가 못되면 나무와 돌로 쌓아올린 성전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높고 묵직한 성전 문을 열어본들 우리 안의 문이 안 열려 영광의 임금님이 듭시지 못하시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거룩한 표징 - 로마노 과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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