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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18:09

거룩한 표징 -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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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혼이란 참으로 신묘한 것이다. 당초에 하느님이 첫 인간에게 동물들 이름을 모두 지으라고 하셨을 때에 사람은 자신과 같은 존재를 아무 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듯이 세상 만물 가운데 놓인 영혼의 처지란 유일하다. 자신은 그 어떤 사물과도 다르다고 영혼은 느낀다. 세상의 그 어떤 학문도 영혼의 이런 의식을 깨칠 수가 없고, 그 어떠한 굴욕도 이를 말살하지 못한다. "나는 이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다르다. 그 무엇과도 판이하고 하느님만 닮았다."

 

  그러면서 인간의 영혼은 역시 만물과 공통하는 데가 있다. 모든 것과 친근함을 느낀다. 우주 안의 형상, 움직임, 몸짓 하나하나가 무언가를 말해준다. 영혼은 그 가운데서 자신의 핵심을 형언해 보려고 쉴 새 없이 애쓴다. 그리고 그것을 제 생명의 표징으로 삼으려 한다. 강한 무엇이라도 만나면 어딘가 자신의 본질이 거기 발로된 듯하고 자신 안의 무엇인가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다.

 

  그러기에 비유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은 그 어떤 사물과도 판이하므로 나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 모든 것과 통하기 때문에 사물과 사건을 또한 자신의 표상으로 체험하게 된다.

 

  많은 사람 앞에 아름답고 힘있게 서 있는 초도 그런 비유의 하나이다.

 

  촛대 위에 어떻게 서 있나 살펴보자. 큼직하고 묵직한 발이 받쳐주고 있다. 발에서부터는 촛대가 든든하게 솟아 있고 초는 그 위의 받침 한가운데에 꽂혀 있다. 위로 갈수록 약간 가늘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높이 뻗어올라가도 그 생긴 모양이 틀림없다. 초는 이토록 날씬하고 조촐하면서도 따뜻한 살결을 한 그 매끈한 모습을 뚜렷이 나타낸다.

 

  위에서는 불꽃이 조용히 타오른다. 그 불꽃 안에서 초는 온몸을 따뜻하고 눈부신 빛으로 화한다.

 

  초를 보면 우리는 무언가 매우 고상한 것을 느끼게 된다. 흔들림 없이 제자리에 곧게 서 있는 맑고 고상한 초를 바라보라. 어디로 보나 "여기 대령하나이다" 하는 모습이다. 초는 제가 서야 할 자리에 서 있다. 하느님 대전에. 조금도 발을 빼거나 꺼리지를 않는다. 어디까지나 뚜렷이 대령하는 자세이다.

 

 

  그리고 천명(天命)을 따라 자신을 그침없이 빛과 열로 다한다.

 

  "초가 무엇을 알기에. 영혼도 없는 것이" 할지도 모른다. 없다면 영혼의 표현으로 여기면 된다. 초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주님, 여기 대령했나이다" 하고 태도를 가다듬자. 그렇게 하면 초의 그 곧고 말쑥한 자세를 우리 자신이 지닌 마음가짐의 표현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준비태세를 올바른 충의로 승화시키면 "주님, 저 초 안에 서 있나이다" 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자신의 천명을 기피하지 말자. 끝까지 다 하자. "왜", "무엇하러" 하고 묻기만 하지 말자. 진실과 사랑 안에, 하느님을 위해 스스로를 다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깊은 의의이다. 빛과 열로 자신을 사르는 저 초처럼.

 

거룩한 표징 - 로마노 과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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