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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7 11:58

거룩한 표징 - 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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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신비롭다. 더없이 순수하고 소박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물을 가리켜 "정결하다"고 하였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주장도 욕심도 없는 듯하다. 남만을 위해서 봉사하고 맑게 씻어주고 생기를 돋아주는 무아의 존재라 하겠다. 그러나 깊은 물이 혼이라도 지닌 양 사람을 부르는 듯한 때도 있다. 그 깊이가 얼마나 신비롭던가. 그 깊이의 저 속은 사람을 현혹하면서도 무언지 무서운 경이로 가득할 것만 같다. 물이 어떤 때는 세찬 급류가 되어 밤낮으로 콸콸 흘러내린다. 또는 소용돌이치면서 빨아들인다. 물에서 어두운 힘이 우러나와 사람을 겁으로 사로잡을 수도 있다.

 

  물은 신비롭다. 소박하고 맑고 욕심이 없다. 더러운 데를 말끔히 씻어주고 메마른 데를 축여주기 위해 있다. 그러나 알 수 없고 불안하며 어두운 힘이 있어 멸망으로 미혹하는 것 또한 물이다. 물은 그래서 생명도 싹트고 죽음도 부르는 신비로운 본원(本願)의 비유이다. 그토록 분명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생명 그 자체의 비유라 하겠다.

 

  그러고 보면 교회가 물을 가지고 하느님 생명과 은혜의 표징과 그릇으로 삼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세례에서 우리는 일찍이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 묵은 사람이 죽어 물에 묻힌 뒤에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 "거룩한 물"인 성수로써 이마와 가슴과 두 어깨를 찍으면서 십자성호를 긋는다. 즉, 헤아릴 수 없고 맑고 순박하고 생명을 낳는 대자연의 근원 요소이자 초자연의 생명 요소인 물, 은혜의 표징이며 도구인 물로써 우리는 성호를 긋는 것이다.

 

  교회는 물을 축성함으로써 정화한다. 그 안에 잠재하는 어둠의 세력에서 정화한다. 이런 말은 공연한 소리가 아니다. 정감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물에서 엿보이는 자연의 마력(魔力)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만의 힘일까. 자연 너머에서 오는 어두운 무엇이 아닐까. 자연에는 그 온갖 풍요와 아름다움 한가운데에 악과 악마의 힘도 담겨 있다. 우리의 감관을 마취시키는 도시생활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것을 더는 느끼기 어렵도록 해놓았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알고 하느님께 저항하는 모든 힘에서 물을 "정화"하여 "축성"하며, 물이 하느님 은혜의 힘의 도구가 되도록 기구한다. 그래서 신자는 하느님 성전에 들어설 때면 영혼이 맑아지라고 이마와 가슴과 어깨, 즉 온몸을 이 정하고 정화하는 물로 적신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가. 이 예절을 통해 죄지은 자연과 은혜와 결백을 그리는 인간이 서로 십자가 표시 안에서 얼마나 잘 결합하는가.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어도 그렇다. 속담에 "밤은 아무에게도 벗이 못된다"고 하였다. 이 말에도 일리가 있다. 우리는 빛에 살기로 창조되어 있다. 나절의 빛과 의식의 빛이 잠과 어둠의 다스림을 받을 무렵이면 사람은 해방되고 속죄된 인간성의 상징인 성수로써 십자서호를 긋는다. 하느님이 온갖 암흑에서 보호하시길 비는 뜻에서이다. 그리고 아침에 어둠과 무의식에서 다시 깨어나 하루의 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또 한 번 성수로 십자성호를 긋는다. 영세 때의 그리스도의 빛으로 깨어나게 하던 저 거룩한 물을 상기하는 행위이다. 이것 역시 아름다운 예절이다. 이번에는 구원된 영혼과 구원된 자연이 십자성호에서 만나는 것이다.

 

 

거룩한 표징 - 로마노 과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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