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내 발의 등불

 

 

"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통이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온 건물은 이 모퉁이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 모퉁이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에페 2,19-22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스승을 보내주신다면, 아아! 우리가 얼마나 기꺼기 그들을 따랐겠는가! 필연성과 사건이 바로 그 스승들이다."  파스칼, <팡세>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위기'라는 말이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위험'을, 다른 하나는 '기회'를 의미한다. 감사하는 사고는 일상에 나타나는 위기를 패배로 이끄는 장애물로 보지 않고 꿈을 재조정할 방향을 제시하는 기회로 보게 해준다."  에드리언 카암과 수잔 무토, <감사의 힘>

 

 

 

건축가 로도가 하루아침에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으며 그 자신도 모르게 성인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흥미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여러분이나 나에게도 아직 성인이 될 희망이 조금은 남아있다는 얘기니까! 어쨌든 지금부터 그 일을 소개하려고 한다.

 

로도의 인생은 먼저 석공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부지런히 일해 건축가로 출세했다. 건축가가 되자 유럽에서 가장 큰 몇몇 성당을 건축할 기회가 주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하는 고딕 건축물 하나를 짓기 위해 그 당시 사람들은 5대, 또는 6대에 걸쳐 재능과 노동력을 투자했다. 숙련된 건축가 로도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으며 자신의 직업을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했다. 만일 커다란 성당을 짓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다면 하느님을 위해 그 일에 기꺼이 자신의 여생을 바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하느님이 품고 계신 그에 대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러나 로도는 인생의 말년에 가서야 겨우 그것을 깨닫는다. 그를 '건축가 성 로도'로 변화시킨 하느님의 계획은 로도만을 위한 고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로도에게 신앙생활에 대한 갑작스럽고 강한 매력을 불어넣었고 결국 로도도 그 매력에 더이상 저항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건축업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들어가 규정대로 수련기간을 보낸 뒤 사제가 되었다. 그런 다음 흉포한 전사들의 집단인 원시부족, '어퍼 살라리아의 테스톤' 족을 개종하기 위한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초심자의 열정으로 로도는 테스톤족에 대한 전교를 시작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물론 먼저 그들의 언어를 배운 다음, 원주민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전투 중에도 교육을 계속하기 위해 원정대의 전사들을 따라다니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전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단 한 사람의 테스톤족도 로도 신부가 전파한 새로운 종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다음에 로도 신부는 부족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자신의 행운을 시험해봤다. 그러나 또다시 무관심의 벽에 부딪혔다. 그 부족은 자신들의 미신에 매우 만족하고 있음이 분명했따. 그들은 로도 신부에게 결코 적의를 나타내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일 이유 또한 알지 못했다.

 

당연히 로도 신부는 테스톤족을 개종시키지 못한 데 크게 실망해 전교를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보내달라고 청원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테스톤족이 문화는 원시적이지만 정교한 건축물을 짓는 데 관심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당이나 공동건물은 물론 조촐한 오두막도 매우 정성들여 지었고 내부를 장식하는 데도 무한한 인내심을 보였다. 그들의 이러한 취향이 로도 신부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가 건축가였을 때 짓던 정통 고딕양식의 성당을 이들을 위해서 세운다면? 물론 이번 성당은 표중형보다는 모든 면에서 규모가 작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작업을 마칠 수 없을 테니까. 로도 신부는 혼자서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어느 날 무척 아름다운 축소형 성당이 그들에게 관상용으로 주어진다면 아름다운 건축물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감안할 때 그리스도교에 대한 태도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그 아이디어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본 지금, 아무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 잃을 것은 없지 않은가? 로도 신부는 그 계획을 추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 날부터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그 성당을 가능한 빨리 완성시키자고. 그렇게 해서 꿈에 그리던 사랑스런 건물이 완성되면 테스톤족 전체가 몰려와 형형색색의 유리화와 숲처럼 웅장한 회중석 기둥 앞에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인이 되겠다고 애원하리라! 로도 신부의 계획은 그랬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일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 다양한 훼방꾼들이 그를 방해해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갑자기 온 마을사람들이 밤낮 없이 그의 봉사를 필요로 했다! 부족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다툼의 중재를 요청하는가 하면 중병을 앓는 소년을 간호하느라 며칠을 보내야 했다. 산불이 나면 불을 끄러 가야 했고 식수가 떨어지면 추장의 특별한 부탁에 따라 지하의 수맥을 찾아내 새 우물을 파줘야 했다. 이런 식으로 로도 신부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달려가야 할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며칠씩 그 일에 매달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일을 지연시키는 수많은 테스톤 사람들 앞에서 되도록 상냥한 태도를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짜증이 나서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그는 혼자 이런 말을 중얼대기까지 했다.

 

"이런 축복받은 훼방꾼들 같으니! 도대체 언제 이 성당건축을 마치고 저 사람들 모두를 개종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로도 신부는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려고 항상 노력했다. 마치 그들의 갖가지 요구 외에는 아무런 할 일도 없는 사람처럼 훼방꾼들에게 기쁜 표정으로 웃어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당연히 이처럼 끊임없는 온갖 방해 때문에 성당건축은 자꾸만 늦어졌다. 로로 신부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성당을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아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개미처럼 단호한 결의로 참을성 있게 작업에 매달렸다.

 

좌절의 시간이 계속되었지만 그가 위안으로 삼을 만한 일도 있었다. 그 무렵 기묘한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그는 설교나 개종의 권유도 전혀 하지 않았다) 개종하는 사례가 테스톤족 사이게서 일어났고 해를 거듭하면서 개종자들의 수가 꾸준히 늘었다. 그러나 로도 신부는 그 사실을 거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종교적인 가르침을 받으려고 새로운 예비신자가 찾아올 때마다 크게 기뻐하면서도 성당을 완성하는 일에 너무 열중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로도 신부는 예비신자들이 앞으로 계속 늘어난다면 그들을 가르치느라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다. 물론 그동안에도 로도 신부는 계속 방해를 받았다. 성당을 짓는 일에 매달릴수록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온갖 종류의 일에 더욱 에워싸이게 되었다. 특히 설교를 해달라는 부탁과 성사를 거행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부탁들은 늘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다시 말해, 로도 신부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 직후에 또다시 몰려왔던 것이다. 마치 그가 사랑하는 성당을 절대 완성하지 못하도록 악마가 직접 꾸민 일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너무 여러 방면에 걸쳐 과로한 탓에 로도 신부는 건강이 악화되었고 중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서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항상 하느님에 대한 사랑 속에서 살아온 그는 마침내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러나 테스톤족에 신앙의 빛을 미처 다 전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과 한데 어울려 살면서 그들을 사랑하게 된 지금, 그것은 너무나 그를 슬프게 했다. 테스톤 사람들에게 그가 가장 주고 싶었던 선물을 전해주지 못한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아아, 성당만 완성했어도! 그랬다면 확실히 이 불쌍한 영혼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었을텐데!'

 

이미 죽음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기에 로도 신부는 심부름하는 신자 소년에게 개종한 테스톤족 신자 모두를 자신의 오두막 앞에 모이도록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 창문을 통해서 그들에게 마지막 축복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황급히 사제관을 달려 나갔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소년이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로도 신부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두세 시간쯤

지나 그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곁에는 소년이 돌아와있었다. 그 소년이 말했다.

 

"신부님 모두 모였습니다."

"누가?"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졌던 로도 신부는 자신이 한 말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말예요."

 

그제야 로도 신부는 기억이 났다.

 

'아, 참 그렇지! 그리스도인들 말이지.'

 

또다시 성당도 짓지 못한 채 그들을 남겨놓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이렇게 불쌍할 수가 있나! 그 몇 안 되는 신자들은 동료 테스톤족을 개종시킬 수도 없겠구나. 그들에게 자랑할 아름다운 건물 한 채도 갖고 있지 못하니까 말이야. 주님, 저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자들을 축복하기 위해 튼튼한 장정 둘을 데려와 자신을 침대에서 창가로 옮겨달라고 소년에게 일렀다. 곧 장정 둘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로도 신부의 건강상태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이들이 존경과 애정이 넘치는 태도로 부모를 대하듯, 그들은 죽음을 앞둔 신부를 조심스럽게 들어 창가로 옮겼다.

 

바로 그때 로도 신부는 평생에 가장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창밖에는 슬픔에 잠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엄숙한 침묵을 지키며 오두막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천 명은 넘어 보였다. 그들 모두는 오랜 세월 동안 로도 신부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킨 사람들이었다. 로도 신부가 성당을 완공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져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 테스톤족의 개종은 조금씩 이뤄졌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건축가 로도 신부는 또 다른 의미의 성당, 사람으로 이루어진 성당을 세웠던 것이다. 바로 지상 최고의 성당을! 단순히 훼방꾼을 잘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로도 신부를 갖가지 형태로 귀찮게 하던 그 '축복받은 훼방꾼' 덕택에 하느님도 당신의 성당을 세울 수 있었다.

 

 

  • ?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8.09.10 08:12
    하느님께 다가가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닐 기유메트 신부님의 글입니다. 책도 절판되고, 신부님도 작년에 돌아가셔서 아쉬운 마음을 담습니다. 이야기들 안에 숨겨진 복음의 빛으로 기뻐하시길
  • profile
    김정태 2018.09.11 11:22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라는 구절이...

    바로 우리들이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성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로도 신부님의 평안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 "교환의 신비" 2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9.04.26 545
60 성모송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9.05.19 457
59 연중 제3주일미사 강론(2017.1.22) 김정태 2017.01.22 307
58 사순 제1주간 주일 강론 2017년 3월 5일 마태오 4,1-11 노인과바다 2017.03.03 243
57 빈자리 - 「저 산 너머」 (김수환 추기경 어린 시절 이야기), 정채봉 지음, 리온북스 2019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9.02.27 241
56 "그에게는 내가 모든 것이 되었다" - 「조용한 게 좋아」, 닐 기유메트 성바오로 2019 1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9.07.10 226
55 동방 박사들의 밤 - 「밤에 대한 묵상」, 김진태 신부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9.01.01 223
54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20.06.24 216
53 연중 제2주간 주일 2018년 1월 14일 요한 1,35-42 서정범 2017.12.30 216
52 마리아의 기도 1 1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8.11.25 209
51 「영적 성경 해석」, 엔조 비앙키, 이연학 옮김 안소근 해설, 분도출판사 2019 1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20.02.16 207
50 연옥 맛 1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20.11.02 201
49 루카 복음서 - 안셀름 그륀 신부 『성경이야기』 1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8.11.25 194
48 사순 제4주간 주일 2017년 3월 26일 요한 9,1-41 서정범 2017.03.23 192
47 사순 제2주간 주일 2017년 3월 12일 마태오 17,1-9 서정범 2017.03.09 192
46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17년 6월 18일 요한 6,51-58 서정범 2017.06.13 188
45 사순 제5주간 주일 2017년 4월 2일 요한 11,1-45 서정범 2017.03.28 185
44 거룩한 표징 - 로마노 과르디니(장익주교 옮김) 3 김신부 2018.08.18 180
43 사순 제3주간 주일 2017년 3월 19일 요한 4,5-42 서정범 2017.03.16 180
» 축복받은 훼방꾼 - 닐 기유메트 신부 <내 발의 등불> 2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8.09.10 17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