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규칙
기도는 하느님과의 사랑스러운 통교이며, 성경에 의해 실행되고 지탱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 6,8)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1~13)
우리는 세례와 견진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분은 실제로 우리 안에 계시고 행동하시는가? 우리는 행동을 통해 참으로 우리가 성령께 속하고 그분의 살아 있는 성전인지를 보여 주는가? 세례와 견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밖의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바로 여기에 요점이 있다. 만약 우리가 진실하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삶이 성령의 현존을 거의 증거하지 못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부께 성령을 청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청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께 우리 자신을 열도록, 그분이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당신 자신을 표현하시도록, 점차 그분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소유하시도록 성령께 청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면 우리는 매사에 육이 아닌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순수한 정신이며 영이심을, 따라서 오직 성령을 통한 사고의 길만이 그분과 통교할 수 있는 방법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외에는 달리 통교할 방법이 없다. 만약에 내가 하느님을 본다면 나는 하나의 우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상사의 노력이 아니고 숙고의 작업이다. 정신과 마음에 의해 움직이는 생각이야말로 하느님과 통교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만약 백일몽을 꾸거나 혹은 나의 문제에 틀어박혀 있거나, 빈말을 하거나 그런 글을 읽는다면 나는 그분과 통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생각하고 사랑할 때 그분과 통교한다. 바오로 성인은 이 어려운 내적 작업에 도움을 주러 오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가르치신다.
바오로는 말씀하시기를 :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 8,26)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다음의 사실을 꼭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에 대해 책임이 있다. 우리는 성령을 환영하여 맞이할 수도 있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닫아버릴 수 있으며 성령께 동의하거나 부인 할 수도 있다. 그분께 자유로운 출입을 허락하거나 그분의 행동들을 막을 수도 있다. 이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책임은 동시에 큰 선물이기도 하다.
이 주어진 선물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선택의 자유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참된 자녀이자 진심으로 사랑할 능력이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하느님을 거절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선택할 능력을 받았다. 그러니 우리를 성령께 온전히 열든 그분을 거절하든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히 밝히셨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이는 우리가 언제든지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느님의 이 무한한 선물을 이용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으나 아무도 기도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우리가 비참한 상황을 겪을 때가 있겠지만 어떠한 불행도 우리의 가능성이나 기도, 즉 성령을 소유할 가능성을 빼앗을 수는 없다.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실천적 제안
* 성령께 도움을 청하지 않은 채 기도를 시작하지 마라.
* 자신보다 하느님을 더 바라보라.
* 그대의 생각이 딴 데로 흘러가지 않게 하라.
하느님과의 접촉을 멈추지 마라.
연결이 끊겼을 경우에는 고요히 그리고 평온하게 다시 하느님과 접촉하라.
그분께 돌아올 때마다 그대의 선한 의지와 사랑을 자극하라.
* 그대의 마음과 주의를 다하여 아주 적은 말로, 그러나 조용하고 평온하게 그분께 집중하라.
* 기도 후에 성령께 감사하라.
기도는 하느님과의 사랑스러운 통교이며, 성경에 의해 실행되고 지탱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 6,8)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1~13)
우리는 세례와 견진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분은 실제로 우리 안에 계시고 행동하시는가? 우리는 행동을 통해 참으로 우리가 성령께 속하고 그분의 살아 있는 성전인지를 보여 주는가? 세례와 견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밖의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바로 여기에 요점이 있다. 만약 우리가 진실하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 삶이 성령의 현존을 거의 증거하지 못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부께 성령을 청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청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께 우리 자신을 열도록, 그분이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당신 자신을 표현하시도록, 점차 그분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소유하시도록 성령께 청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면 우리는 매사에 육이 아닌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순수한 정신이며 영이심을, 따라서 오직 성령을 통한 사고의 길만이 그분과 통교할 수 있는 방법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외에는 달리 통교할 방법이 없다. 만약에 내가 하느님을 본다면 나는 하나의 우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상사의 노력이 아니고 숙고의 작업이다. 정신과 마음에 의해 움직이는 생각이야말로 하느님과 통교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만약 백일몽을 꾸거나 혹은 나의 문제에 틀어박혀 있거나, 빈말을 하거나 그런 글을 읽는다면 나는 그분과 통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생각하고 사랑할 때 그분과 통교한다. 바오로 성인은 이 어려운 내적 작업에 도움을 주러 오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가르치신다.
바오로는 말씀하시기를 :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 8,26)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다음의 사실을 꼭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물에 대해 책임이 있다. 우리는 성령을 환영하여 맞이할 수도 있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닫아버릴 수 있으며 성령께 동의하거나 부인 할 수도 있다. 그분께 자유로운 출입을 허락하거나 그분의 행동들을 막을 수도 있다. 이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책임은 동시에 큰 선물이기도 하다.
이 주어진 선물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선택의 자유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참된 자녀이자 진심으로 사랑할 능력이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하느님을 거절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선택할 능력을 받았다. 그러니 우리를 성령께 온전히 열든 그분을 거절하든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성령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히 밝히셨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이는 우리가 언제든지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느님의 이 무한한 선물을 이용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으나 아무도 기도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우리가 비참한 상황을 겪을 때가 있겠지만 어떠한 불행도 우리의 가능성이나 기도, 즉 성령을 소유할 가능성을 빼앗을 수는 없다.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실천적 제안
* 성령께 도움을 청하지 않은 채 기도를 시작하지 마라.
* 자신보다 하느님을 더 바라보라.
* 그대의 생각이 딴 데로 흘러가지 않게 하라.
하느님과의 접촉을 멈추지 마라.
연결이 끊겼을 경우에는 고요히 그리고 평온하게 다시 하느님과 접촉하라.
그분께 돌아올 때마다 그대의 선한 의지와 사랑을 자극하라.
* 그대의 마음과 주의를 다하여 아주 적은 말로, 그러나 조용하고 평온하게 그분께 집중하라.
* 기도 후에 성령께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