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만나는 길(35)

by 이진기(토마스) posted Feb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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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받아들여라

정직함과 논리적인 사고로 살펴볼 때 기도는 마술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년 동안의 태만과 나쁜 습관으로 빚어낸 상태를 단 한 번의 기도로 하느님께서 고쳐 주시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만일 하느님께서 나의 이 경솔한 태도에 응답하신다면 진실하신 분이 아닐 것이다. 내가 극복해야만 하는 어떤 나쁜 버릇을 다만 좋은 법을 통해서 항구하게 열심히 투쟁한다면 고칠 수 있다. 한 삽씩 한 삽씩 서서히 일을 시작하여 높은 산도 허물 수 있다. 내가 투쟁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 나의 의지를 굳세게 해주시고 항구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기도에 항구 하라

만약 급할 때만 응급처치 식으로 기도한다면 우리는 기도에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기도는 타이어가 펑크날 때 바꾸기 위해 준비해 둔 타이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차 전체와도 같고 생활 자체 바로 그것이다. 기도 없이 생활할 수가 없을 만큼 기도의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즉 모든 투쟁의 길에서 하느님과 같이 걷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가 멈춘다면 보통 하느님께서도 멈추시거나 나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멈추는 것처럼 하신다. 그리고 내가 다시 출발하면 그분께서도 다시 출발하신다.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먹고 마시고 잠을 자야하는 육신의 법칙과도 같이 나의 일과 안에 체계적으로 기도를 위해 많은 시간을 내고 가능한 한 일정한 시간을 갖기를 결정한다면 기도의 습관이 내 자신 안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생의 이 필요성에 하루도 빠짐없이 응하듯이 기도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하느님께 간청할 때는 분명하게 하라

우스운 사실 같지만 명확하게 것은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지 하느님께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청한다는 것은 우리가 청하는 그것을 참으로 원한다는 뜻이다.

흔히 우리는 기도 후에 우리가 무엇을 청하였는지조차 모른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과 협조하려는 의지가 하나도 없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흔히 한두 번씩 청하는 것으로 끝내고 만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느님과 협조하려는 마음이 소극적이라는 뜻이다.

‘주님의 기도’가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야 한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루카 11, 3).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오늘 하루만을 위하여 청하고 다음 번 기도 때까지 만을 위해 청한다면 우리가 협조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순간순간 충실하고, 처해진 상황을 보아 행동한다면 아무리 큰 문제라도 대처할 수 있고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보다 나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태만과 게으름을 허용하실 수가 없다.

 

 

기도할 때 체계적으로 하라

기도는 마치 우리들의 육체의 병을 방사선으로 치료하는 것과 같으며 또 우리의 병을 약으로 치료하는 것과도 같다. 체계적으로 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한다는 표시인 것이다. 약물치료는 함부로 하지 않으며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한다. 객관적인 눈으로 우리의 병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이미 병을 제거하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치료와 회복을 향한 첫 걸음이다. 그래서 먼저 병을 세밀히 진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주원인이 되는 것을 가려낸 다음, 그것에 대해 기도로써 치료하도록 한다.

이때 병을 제어하고 모든 것을 조정하는 도구, 방법들을 항구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생각하고 원하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병을 제어할 수 있는 세 가지 도구이다. 우리는 절대로 이 도구를 망각할 수 없으며 무관심할 수가 없다. 이 도구들은 동시에 함께 사용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마치 운전대, 클러치, 기아를 사용하여 차를 운전해야 하는 것과도 같다. 기아와 클러치를 무시하고 운전대에만 신경을 기울일 수 없고 동시에 이 세 가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줄 알만큼 습관들여야 한다.

이처럼 매일 기도 때마다 지성, 의지, 마음 즉 사고력, 의지력, 사랑하는 능력을 새롭게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 나의 전 존재를 조정하는 세 가지 도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다운 통회의 기도이고 회개의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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