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만나는 길(39)

by 이진기(토마스) posted Mar 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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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녀들이며 형제들이다.

우리에게 있어 아버지의 실재가 하나의 말마디일 뿐이고 어렴풋한 현실밖에 되지 않을 때 우리들의 형제인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느님이 정말 우리의 아버지 시고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진정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깨닫게 되고 생활하게 될 때 아버지의 기쁨이요 그분의 유일한 아들인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참다운 자녀로서 아버지께로 나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그것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 주실 잣이다”

(요한 16, 23)

 

‘진실히 약속한다’라고 하는 뜻을 가진 이 성대한 서문 뒤에는 그리스도의 지극히 분명한 확언이 있다.

‘해 보십시오, 그 효과를 보게 될 것이며 나와 일치하여 나와 하나되어 내 이름으로 하는 기도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 같다. 여기서 첫째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이것이다.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이로 인해 우리들이 기도할 때 경솔함과 경박함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하나가 된다는 것은 적어도 이러한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우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그것만을 청하고, 또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그 방법으로만 청하는 것이다.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인 것인가? “아버지! 그리스도의 입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그리스도의 신뢰로 아버지께 청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려야 할 첫 번째 결론은 이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것은 말로뿐만 아니라 깊은 내적 생활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해본 적이 없다. 구하여라…” (요한 16, 24)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정말 새로운 면이다. 이 기도가 우리를 ‘크리스챤화’ 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들은 혼자서 기도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항상 그리스도안에 잠겨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되어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실 때 모두 다 복수형을 쓰셨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기도의 새로운 면을 인정하고 크리스챤 적인 이 새로운 기도를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체험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러므로 이에 순응하자. 독단적으로 하는 기도와 그리스도 안에 전적으로 뿌리박고 그리스도와 깊이 일치한 기도를 비교해 봄으로써 이 두 가지 기도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완전히 상반되는 두 세상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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