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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단계 : 들 음

 

기도의 셋째 단계인 대화에 도달하였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또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것이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나아가야 한다’. 기도의 절정은 아직 여기에 있지 않다. 들음에 도달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듣는 기도를 할 줄 안다면 기도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가끔 잠깐 동안만이 아니라 항구하게 이 경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기도에 단련되지 않은 사람은 어쩌다 한번씩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지만 즉시 미끄러진다.

항구하게 머물러 있기는 힘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자신을 정화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교만을 꺾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

진실하고 참다워야 한다. 우리 얼굴의 가면을 벗어버릴 줄 모른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없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이것이다.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고, 진리 안에 머물고, 우리 자신 안에 거짓된 면들을 밝혀내는 것이다.

자신의 미약함을 용감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 검은 것은 검다 하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면적으로 생활할 때가 많다. 하느님과의 만남에 앞서 우리 자신의 편리한 생활을 뒤바꾸어야 하고 우리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이해하고 하느님 앞에 전적으로 가난한 모습 그대로 자신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가 진실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참으로 깊이 파고드실 수 있고… 그리고 말씀하실 수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어떠한 통로로 말씀하시는가? 정상적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자에게 그와 통교하기 위해 아래 다섯 가지 통로를 이용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정 신

하느님께서 깨닫게 해주신다.

아주 분명한 방법으로, 새로운 빛 안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하시므로 착각들이 무너지면서 평화가 깨지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불안하게 만드시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 불안하게 한다. 하느님의 음성은 조그마한 것으로도 질식시킬 수 있는 미묘하고 고요한 것이다.

 

의 지

하느님께서 원의를 주신다.

의지가 분명한 방향을 향하여 움직인다. 한 토막의 쇠가 자석의 영향권에 들어갈 때 자석에 끌려가듯이 우리의 의지가 하느님께로 향하게 되며 유순하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우리를 어루만지신 분이 하느님이시다.

 

 

감 동

모두가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한 후 강한 기쁨의 순간을 체험했을 것이다. 설명하기는 힘이 들지만 때로는 기쁨이고, 때로는 다만 깊은 평화이며 때로는 아주 감격적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느낌을 주신 것이다.

구체적이고 좋은 열매가 뒤따른다면 이 감동은 하느님과의 참 친교에서 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거의 확실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영적인 세계를 아무도 분명히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셨다. 하느님과의 친밀한 이 순간들이 우리를 열심해지게하며, 애덕에 있어 성장하게 하며, 이기주의를 끊어버리게 하고, 우리를 겸손해지도록 한다면 바로 이 열매가 있는 것이다.

덧붙여 말해야 하겠다.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의 감정이 좋아하는 식으로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때로 후회와 불쾌감과 허무감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응답하기를 기다리신다.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이 자체가 이미 우리 안에서의 하느님의 활동이고, 은총의 선물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응답을 기다리신다.

 

상 상

버나드 쇼(Bernard Shaw)가 쓴「아르스의 성녀 요안나」의 대화 가운데 재판관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듣는다는 그 음성은 당신의 상상에서 오는 것이다”고 하였다. 성녀는 대답하기를 “물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 우리들의 상상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들의 생활에 있어 하느님께서 아주 명백한 방법으로 말씀하셨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밝은 빛을 가졌던 순간이 있다. 우리 모두는 거의 다 이것을 체험해 보았을 것이다.

물론 몽상가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대, 우리가 듣는 양심의 소리는 아주 분명하고 또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머리카락까지 셈하시고’ 우리들의 생활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들의 결심에 영향을 끼치면서 개입하시는 신비스러운 그 현존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기 억

하느님께서는 어떤 때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회상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영향이 미치게 해주신다. 슬픔과 기쁨, 실패와 성공, 받았던 충고, 들었던 말, 조언, 보거나 받았던 표양들, 본 것들, 배운 것들… 잊어버렸던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때로는 우리가 많이 사랑하였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거나 혹은 잘못과 죄에 대한 쓴맛을 다시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얼마나 자주 말씀하시는지! 문제는 그분께 응답하는 것이다.

그 다음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다면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 즉 성서가 있다.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에 따로 다루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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