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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글씨로 3년 만에 성경 필사한 101세 할아버지 “은총 충

만”

부산교구 서대신본당 안의원(모세) 할아버지

 

▲ 부산교구 서대신성당에서 만난 안의원 할아버지가 성경 필사본 앞에 서 있다.


7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부산교구 서대신본당은 두 가지 자랑이 있다. 하나는 6ㆍ25 전쟁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6년 창단된 본당 ‘영원한 도움의 성모’ 쁘레시디움이다. 이는 부산을 넘어 영남 레지오 마리애의 초석이 됐다. 그래서 서대신성당은 ‘영남지방 레지오 마리애 발상지’라고 불린다. 다른 하나는 ‘아주 특별한’ 쁘레시디움 단원의 ‘아주 특별한’ 성경 필사본이다.

올해 101세인 안의원(모세) 할아버지가 아흔 되던 해부터 3년에 걸쳐 붓글씨로 쓴 신ㆍ구약 성경이다. 무려 한지 두루마리 700장 분량이다. 지금은 부산교회사연구소에서 소장 중인 필사본 일부가 1월 11일 잠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교황청에 바친다는 각오로 시작

“처음엔 시편을 읽다가 구절이 아주 좋은 거예요. 서예가 입장에서 글씨로 써봄 직했죠. 그래서 따라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나데요. 창세기부터 성경 전체를 다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호랑이도 가죽을 남긴다는데, 나도 주님께 봉헌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면 좋겠다 싶었죠.”

성경 필사를 시작한 이유를 묻는 말에 안 할아버지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필사본 앞에 환한 얼굴로 당당히 선 그는 본래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지팡이도 없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걸었고, 악수했을 때 느껴지는 아귀힘도 무척 강했다.

도전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들 한다. 안 할아버지라면 그렇게 믿을 만했다. 그는 완성된 필사본을 비단으로 곱게 싸 교황청에 기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루에 길게는 8시간씩 붓을 들었다. 팔꿈치에는 굳은살이 박였다. 안 할아버지는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나 부끄러움 없이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그냥 열심히 썼을 뿐”이라고 웃었다.

그런 아버지 모습을 본 아들 안명용(67, 베드로)씨는 자신의 신앙을 진지하게 돌아봤다. 평소 신앙심이 부족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새벽 미사에 나가보기로 했다. 이후 그는 10년 넘게 매일 새벽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손주들도 할아버지를 본받아 신앙심을 키워나갔다.

마침내 필사를 시작하고 3년 만에 마지막 온점을 찍은 순간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안 할아버지 표현으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그는 “아쉬운 점도 딱 하나 있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교황청에 바칠 것이잖아요. 그래서 1300만 원을 들여 두루마리 한 장 한 장을 족자로 표구했어요. 근데 이 돈으로는 3분의 2까지밖에 할 수 없더군요. 그게 참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농부의 아들이 서예가가 되다

안 할아버지는 인생 자체가 필사와도 같았다. 과정이 길고 곡절도 많지만 결국은 좋게 완성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6ㆍ25 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이다. 평양 인근 진남포시(현 남포시)에서 농장주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글씨를 배웠다. 머리가 좀 컸을 무렵, 해강 김규진 제자로 들어가 실력을 키웠다. 김규진은 합천 해인사 일주문 현판 글씨를 쓴 당대 최고 명필 중 하나다. 어른이 된 안 할아버지는 국어와 한문을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 그러나 공산 정권 치하에서 그는 반동분자 취급을 받았다.

“목숨에 위협을 느껴 아내와 두 살배기 딸과 함께 남한으로 왔어요. 그 과정은 험난했죠. 구사일생이었어요. 마침내 이북에서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한 순간 목이 터지라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죠.”

안 할아버지는 남한에서도 교직 생활을 했다. 서예 실력을 살려 강습도 종종 맡았다. 부부는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더 낳았다. 이북에서 어릴 적 개신교 세례를 받은 그는 1991년 맏딸 권유로 가톨릭 신자가 됐다. 처음엔 색다른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쁘레시디움에 들어간 덕에 융화될 수 있었다. 안 할아버지는 “훌륭한 단원들이 참 많았다”며 “단장까지 했으니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오래 산 것도 다 주님이 보살펴 주신 덕인 것 같다”고 웃었다.

“나이 쉰에 이가 신통치 않아 다 뽑고 의치로 갈아 넣었어요. 그때는 벌써 이가 없으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100살까지 살아 있으니 이게 바로 주님의 은총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안 할아버지는 언제든 다시 붓을 들 준비가 돼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써주고 싶은 글자가 있단다. 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성령 충만’이라고.

가톨릭 신자이자 서예가인 안 할아버지가 성경 필사를 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몸과 마음으로 성경을 쓰는 사람에게는 늘 주님이 복을 내려주시기 때문이다. 남은 생애 동안 글씨로 기도하며 살고 싶다는 안 할아버지, 그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아름답다.

“천당 문이 열렸을 때, 성당 꽃동산의 한 모퉁이에 작은 민들레 한그루가 됐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 안의원 할아버지가 주임 주영돈 신부와 함께 성경 필사본 앞에 서 있다.


필사본이 다시 세상 빛을 본 사연

원래 필사본은 몇 년간 서대신성당 창고에 보관돼 있었다. 재발견한 인물은 바로 지난해 8월 주임으로 부임한 주영돈 신부였다. 처음 창고에 들어간 주 신부 눈에 커다란 상자가 여럿 쌓인 모습이 들어왔다. 호기심이 생겨 상자를 열어본 그는 깜짝 놀랐다. 웬 두루마리가 한가득 들어있는 게 아닌가. 하나를 집어 펼쳐보니 붓글씨로 한글과 한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필치였다. 내용을 찬찬히 읽던 주 신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름 아닌 성경 구절이었다. 필사본을 쓴 주인공이 안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또다시 매우 놀랐다. ‘그 나이에 이런 엄청난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또 있겠는가!’

주 신부는 이 두루마리들이 성당 창고에서 보관할 물건이 아님을 직감했다. 교구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는 귀한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29일 부산교회사연구소에 필사본을 기증했다. 안 할아버지가 몸과 마음으로 쓴 필사본은 그렇게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됐다.

필사본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부산교회사연구소 부소장 김덕헌 신부는 “앞으로 필사본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소장 신부님과 차츰 논의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교구 차원에서 신자들에게 성경 필사를 꾸준히 권하고 있다”며 “고령에도 이렇게 훌륭한 수준으로 필사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좋은 모범 사례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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