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옥봉성당
1957년 1월 21일 부산 대목구가 대구 대목구로부터 분리 · 신설됨에 따라 진주 본당은 다시 부산 대목구에 속하게 되었다. 부산 대목구의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의 권유로 1957년 6월 20일부터 프란치스코회가 서부 경남의 일부인 진주 · 사천 · 삼천포 · 하동과 산청군 일부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 해 6월 20일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주포니(C. Giupponi, 주) 콘스탄시오 신부가 7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주포니 신부는 8대 주임 최성근 베드로 신부가 잠시 본당을 맡은 기간을 제외하고 다시 9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67년 1월까지 10여 년 동안 본당 사목을 맡아 교육 · 자선 · 사회 사업에 진력하였다. 주포니 신부는 관할 구역 안에 있는 공소와 다른 본당의 발전도 함께 도모하였다. 즉, 공소의 활성화를 위해 1959년 3월 단성 · 시안 · 삼장 · 단계 · 청현 · 하정 · 방목 · 자양 · 송강 · 장죽 등의 공소를 신설하였고, 그 해 6월에 하동 공소의 택지 94평을 추가로 매입하여 공소 대지를 총 313평으로 늘린 뒤 11월에 공소 건물을 수리하였으며, 1959년 9월에는 장죽리 185번지의 부지 65평을 매입한 다음 12월에 39평 규모의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 또한 1963년에 의령 화정 공소를 신축하였고, 1965년 9월에는 하동 근교의 나환우촌 ‘영신원’ 안에 공소를 설립하고 10월에 건물 한 동을 매입하여 공소 건물을 확장하였다.
아울러 주포니 신부 재임 기간에 여러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 분리되었다. 1957년 6월 20일 삼천포 공소가, 1965년 12월 27일에 하동 공소가 각각 본당으로 승격 · 분리되었고, 1959년 10월에는 사천 공소가 준본당으로 승격된 뒤 1965년 6월 본당으로 승격 · 분리되었으며, 1965년 3월에는 칠암동(七岩洞) 본당이 진주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다.
성당 내부.또한 주포니 신부는 1959년에 경남 산청군 산청면 내리 91번지의 대지 28,000평을 구입하여 6월 18일 ‘성심원’(성심인애병원의 전신)을 창립하여 진주시 구생원(나환우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던 천주교 신자 60명을 이곳에 이주시켰고, 1963년에는 진주시 칠암동 78번지의 땅 1,553평을 매입하여 목조 건물 6동을 신축한 뒤 ‘성 프란치스코의 집’이라는 양로원을 개설하고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수녀들로 하여금 봉사하게 하였다. 아울러 사제가 없는 장재동 본당의 미사와 성사를 빠짐없이 집전하였고, 1961년에는 60만 원을 들여 장재동 본당의 각종 부속 건물들을 보수해 주었으며, 신부가 공석 중인 문산 본당의 사목도 사천 본당의 라우리올라(G. Lauriola, 安) 신부와 격주로 담당하였다.
출처 : 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3_02&wr_id=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