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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1 10:56

거룩한 표징 - 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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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고찰한 것을 마무리하여 그 뜻을 밝혀보기로 하자.

 

  우리에게 벌써 오래 전부터 너무나 익숙한 동작들이 이제 새롭게 느껴지게 되었다. 수천 번 보아온 것을 다시 옳게 살핀 결과 그 안에 담겨 있던 아름다움이 드러났다. 귀를 기울였더니 우리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벌써 수없이 해온 동작을 정성스럽게 해보았더니 그 숨은 내용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크나큰 발견이다. 이미 오래 지니고 있던 것을 다시 얻어 정말 내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발견이다. 올바로 보고 올바로 듣고 올바로 하기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그것이 참 깨달음과 슬기를 체득하는 길이다. 그것을 얻기까지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없고 어두운 채 그친다. 그러나 이 길을 체득하고 나면 모든 것이 안으로부터 열려 그 본체로부터 내용이 외양을 형성하게 된다. 또 그렇게 되면 가장 평범한 것, 가장 일상적인 행위가 가장 깊은 내용을 품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가장 단순한 데에 가장 위대한 신비가 담겨 있는 법이다.

 

  예컨대 층계가 그렇다. 누구나 헤아릴 수도 없이 여러 차레 오르내렸던 층계다. 그러나 그렇게 오르내리면서도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생각이나 해보았던가. 그런데 층계를 오를 때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만 너무나 은연중에 일어나는 일이라 미처 느끼지를 못할 따름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깊은 신비가 드러난다. 위로 올라가는 이 행위는 우리 인간 본성의 바탕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작용의 하나라 하겠다. 수수께끼 같아서 이성만으로는 풀 수도 없는 작용이지만 인간의 핵심이 거기 응하기 때문에 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작용이기도 하다.

 

  층계를 오를 때면 발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전체로 올라간다. 정신적으로도 우리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는 이 행위에 마음을 두다 보면 모든 것이 위대하고 완성된 저 높이, 하느님의 거처인 저 하늘로 오르는 길도 있음을 은연중 감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울러 어떤 신비를 짐작한다. 하느님에게 무슨 위아래가 있겠는가. 우리로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라곤 자신이 더 맑고 곧고 나아지는 것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것과 몸으로 어디를 올라가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맑게 사는 일과 저 높이에 이르는 것과는 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렇게 말해놓고 보면 구태여 더할 말도 없다. 아래란 본래 작고 언짢은 것의 표상이고 보면 위로 올라간다는 말은 우리의 본성으로보터 "지극히 높은 존재"로, 하느님께로 올라감을 뜻한다. 이런 것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틀림없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길바닥으로부터 성당으로 이끄는 층계가 있고 그 층계가 "올라가 보시오. 기도의 집으로. 하느님 가까이 가 보시오" 하고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 성당 안 회중석에서 성역으로 올라가는 층계는 또 "이제는 지존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하고 알려준다. 제대에도 층계를 지나 올라서게 되어 있다. 그리고 올라가는 이에게는 일찍이 하느님이 호렙 산상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듯이 "신을 벗어라. 여기는 거룩한 땅이다" 하고 층계가 말해준다. 제대는 바로 영원에의 문턱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가. 이제는 우리도 무심히 층계를 오를 수 없으리라. 위로 이끄는 길인 줄 알면서 어찌 무심하겠는가. 저속한 것일랑 모두 저 아리에 두고 정말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리라. 더 무슨 말을 보태랴. "주님의 승천"이 우리 마음속에서도 구현됨을 깨닫자는 말밖에.

 

거룩한 표징 - 로마노 과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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