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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23:47

마리아의 기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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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기도 1에 이어...

 

51절에 나오는 표현, ‘당신 팔의 큰 힘은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의인화로서, 하느님의 위업을 묘사하는 주요 본문들, 특히 출애굽 사건과 관련된 본문들에 나온다(탈출 6,1.6; 신명 3,24; 7,19; 2열왕 17,36; 이사 30,30). 또한 제2출애굽이라 할 수 있는 바빌론 유배에서의 해방을 언급하는 본문들에도 나온다(에제 20,33-34; 이사 53,1). 하느님은 구원하시는 능력을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위하여 행사하실 터인데 아무도 그분을 대적할 수 없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은 하느님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적 물질적 재산과 능력에 집착하면서 동료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하고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 자들을 말한다. 거만한 자들을 하느님이 흩어 버리신다는 생각은 구약 성경에 자주 나온다(민수 10,35; 시편 68,2; 89,11).

 

 

서로 반대되는 병행이 연이어 나오는 52절에서 53절은 사회 계층의 뒤바뀜을 묘사한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하느님이 결정적으로 권능을 행사하시면 권세 있는 자와 미천한 이, 주리는 이와 부요한 자로 대표되는 두 계층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권세 있는 자는 통치자를 말하고(창세 50,4) 미천한 이는 통치자에게 억압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어지는 문맥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여기서 권세 있는 자는 로마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는 세력으로, 미천한 이는 사악한 통치자에게 억압받는 계약의 백성이나 50절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로 볼 수 있다. 가난하고 미천한 이로 묘사되는 억압받는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시편 9,10-11.16-19; 10,1-4,17-18; 12,2-6), 사악한 통치자의 제거(1사무 2,7; 5,11; 12,19; 집회 10,14), 미천한 이의 들어 높임(1사무 2,7; 시편 147,6; 집회 10,14)은 구약 성경의 주요 주제들이다. 51절에서 53절의 동사 시제는 모두 과거이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며 예견된 미래 상황을 노래한다. 이를 예언적 과거라고 부른다. 미래에 일어날 일이 너무나 확실하기에 과거 시제를 써서 그 일을 미리 선포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리라는 약속도 구약 성경(1사무 2,5; 시편 107,9; 146,7)과 유다교 문헌(솔로몬의 시편, 5,10-11)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사상이 루카 복음서의 참행복 선언 대목(루카 6,21)과 기도 대목(루카 11,13)에도 나온다. 하느님이 부요한 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신다는 주제 역시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1사무 2,5; 15,29; 예레 17,11), 특히 루카는 자기중심적 삶에 집착하는 부자들을 단호하게 배척한다(루카 6,24-26; 12,19-21; 16,25; 21,1-4). 루카 복음서 1221절에 보면 부자들이란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고 그분에게서 떨어진 이들을 말한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구체적 실례로 확인할 수 있듯이 자기중심적 삶을 사는 부유한 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루카 6,31)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제 이웃의 궁핍한 처지에도 무관심하다. 이런 자는 예외 없이 단죄를 받을 것이다. 반면에 미천한 이들과 주리는 이들로 대표되는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며 그분께 온전히 매달리고 의지한다.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때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의 처지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개인에 대한 하느님의 위업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한 마리아의 노래는 이 대목에서 하느님 나라의 전망과 연결되면서 종말론적 차원을 지니게 된다.

 

 

마지막 셋째 부분인 54절에서 55절은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구원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예수님의 사건을 염두에 둔다. 이 두 구절을 본문에 가깝게 옮기면 이렇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자애를 기억하셨기 때문이로다.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또한 우리 조상들에게 영원히 약속하신 바로다.”

 

 

이 두 구절의 시제도 예언적 과거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사건으로 묘사한다. 이스라엘을 당신의 종이라고 한 것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그들의 특별한 위치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의 종또는 주님의 종이라는 표현은 아사야서에 자주 나오고(이사 41,8-9; 42,1; 44,1-2.21; 45,4; 48,20; 49,3) 유다교 문헌에도 나온다(솔로몬의 시편, 12,6; 17,21). 54절 후반부와 55절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도우시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선조들과의 계약 관계에서 주어진 약속이다. ‘자애50절에서 풀이하였듯이 하느님의 성실하신 사랑을 가리킨다. 하느님은 한번 맺으신 계약과 앞서 말씀하신 약속에 끝까지 성실한 분이시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느님은 당신을 소개하실 때 성조들의 이름을 반복하신다. 야곱에게는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창세 28,13)라고 하시고 나중에 모세에게는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6)라고 하신다. 이는 당신의 계약과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실 것이라는 다짐이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과 그 계약에 앞서 전제된 약속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영원히 지켜질 것이다. 여기서 영원히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때를 가리킨다. 마리아는 계약의 약속에서 하느님이 당신의 성실한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라는 전언으로 미나피캇을 마감한다.

 

 

복음서 이전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이 즐겨 불러 온 마리아의 노래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에 충실한 주님의 가난한 이들과 남은 이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위업을 큰 기쁨 속에서 경축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온 마음으로 동의하고 협력한 마리아는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충실히 따른 이들의 뛰어난 모범이다. 루카 복음서에서 마리아는 그들을 대표하여 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 - -

 

 

 

 

우리 교회에 마니피캇을 노랫말로 지은 성가는 수없이 많다. 나는 멜로디에 상관없이 마니피캇 성가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성모님의 조용하고 성실한 생애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서서히 환희로 가득 찬다. 특히 글라라 봉쇄 수도원에서 수녀님들이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마니피캇, 떼제에서 4부 혼성과 솔로가 번갈아 가며 바치는 마니피캇이 좋다. 마니피캇은 균형이 잘 잡힌 찬가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개인의 삶이 온 겨레와 온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은 참으로 성서적이다. 성경에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삶은 모두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알뜰하게 바쳐진다.

 

 

내가 받은 성소가 나 개인의 구원을 위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 조국과 겨레의 구원, 더 나아가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오랫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인 사제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해야 하는 성서학자로서 나는 내가 속한 교구, 내가 맡은 본당에서 편안히 안주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나의 일거수일투족, 내가 하는 말과 행동, 내가 쓰는 글 한 줄이 모두 겨레와 인류의 구원에 직결되어 있다.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느질하는 아낙네의 바늘 끝에, 들판에서 밭을 가는 농부의 괭이 끝에, 사무실에 앉아 경리를 보는 아가씨의 펜촉 끝에, 지금 이 순간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 끝에 하느님이 계신다.

 

 

성모님의 위대한 점은 무엇일까? 나는 성모님께 붙여진 어마어마한 칭호들, 이를테면 천상의 모후, 천주의 모친, 상지의 좌, 평화의 모후 등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복음서에 나오는 성모님의 모습 그대로가 좋다. 가브리엘 천사가 잉태 소식을 전했을 대 당황하고 어리둥절하시던 모습, 친척 엘릿사벳의 해산을 도우러 먼 길을 가신 자상한 마음, 마니피캇을 부르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은 사실에 기뻐하시는 모습이 좋다. 아드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자리에서 아드님의 험난한 장래에 대한 시메온의 날카로운 예언을 듣고 놀라시던 모습, 열두 살 소년 예수님을 잃고 애타게 찾다가 성전에서 발견하고 나무라시는 모습, 그 뒤 아드님의 담담한 대답을 듣고 그 말뜻을 몰라 마음에 새겨 곰곰이 궁리하시는 모습이 좋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예수님께 부탁하여 신랑 집의 체면을 살려 주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신 성모님이 좋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큰 예언자로, 임금으로 떠받들 때는 전혀 드러나지 않으시다가,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올라가실 때는 극형을 받은 중죄인의 어머니로 따라 나서시는 모습, 십자가 밑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시는 아드님을 끝까지 지켜보시고 그분의 주검을 품에 안으시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성모님이 하신 일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주부가 매일 하는 일이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들을 낳아 기르고 남편과 함께 가정을 꾸려 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한 가정의 어머니, 주부로서 지극히 평범한 생애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성실과 순종과 정성으로 완성하셨다.

 

 

나는 때때로 이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또 사제의 길을 밟겠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가정주부로 태어나고 싶어요.” 지금은 독신 남자 신부이니 정반대로 결혼한 여자 평신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다. 하느님이 육화하실 정도로 매력이 있는 인간의 삶이라면 어떤 형태의 삶이든지 고귀하다. 그렇게 고귀하고 소중한 삶을 똑같은 형태로 반복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앞에서 남자와 여자, 성직자와 평신도, 독신자와 기혼자의 구별이나 차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소명에 충실함으로써 개인의 구원을 넘어서 나라와 겨레의 구원, 더 나아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지극히 평범한 인생 안에서도 최상의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을 이끌어 내시는 아버지 하느님, 저로 하여금 제가 받은 부르심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만큼, 다른 이들이 받은 부르심도 소중히 여기게 해 주소서.

 

정태현 신부 - 부르심받은 이들의 부르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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