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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7 14:16

예수와 대사제들

조회 수 127 추천 수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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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누구인가(양장본 HardCover) 라인홀트 슈테혀, 장익 옮김, 분도출판사 2018

 

 

부활의 기쁨 나누며,

부활-수난 의 기억을 회상하며.

 

 

예수와 대사제들

-예언자의 맥을 이어 사회 참여에 투신하며 사회 비판을 하는 예수

 

p 88-100

 

예수의 수난을 극기 수덕하는 영성적 입장이 아닌, 다소 다른 길로 한번 천착해 본다는 것은 지엽적인 데로 일탈하는 일이 아니다. 예수가 겪은 숱한 논쟁과 대립은 결국 그를 유죄판결로 몰아갔거니와 모든 시대를 넘는 구원사적인 핵심을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힘쓴다면 하느님의 아들이 또한 인간이자 현존자로서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런 뜻에서 이제 예수의 적대자들에게 눈을 돌려 보기로 한다.

 

 

나는 예루살렘의 큰 박물관에서 갑자기 대사제 카야파의 골호(骨壺)와 마주치면서 매우 놀란 적이 있다. 그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 적힌 묘지(墓誌)는 분명하였다. 유다교 분야에서 대사제들에 관한 문헌을 보았는데, 한 독실한 랍비가 예수 시대의 대사제 명문가 넷에 관한 불쾌한 추억을 적은 글을 옮겨 실은 것이다.

 

 

나는 슬퍼라, 보에토스 가문 때문에

나는 슬퍼라, 그들의 창() 때문에

나는 슬퍼라, 그들의 깃털 차림 때문에

나는 슬퍼라, 카트로스 가문 때문에

나는 슬프다, 한나스 가문 때문에

나는 슬프다, 그들의 뱀 같은 휘파람 소리 때문에

나는 슬프다, 이스마엘 벤 피아비 가문 때문에

나는 슬프다, 그들의 주먹질 때문에

그들은 대사제들

그 자식들은 재화지기

그 사위들은 성전 두목

그 종놈들은 서민을 막대로 치고...”

 

 

이것은 예수 시대의 타락한 대사제직을 엿보게 하는 유다계 문헌의 한 묘사이다. 동시에 예수의 적대자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존재로 본 유력자의 이름이 이미 나타나 있다. 한나스(히브리어로 하냔야)가 바로 그다.

 

 

위에 거명된 가문들은 예루살렘의 부유층을 대표한다. 이들 가문의 한 궁궐을 성전 서쪽에서 발굴하였는데, 백성 대부분은 가난한 마당에, 엄청난 재산의 흔적을 만났다. 이 네 가문은 예수 시대에 대사제직을 번갈아 맡았다. 그 직책은 사실상 로마 지방 태수(太守)들로부터 매수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로마 고위 관료들이 탐내는 수입원의 하나였다. 오늘 우리로 치면 억만금이 오갔다. 그래도 이 가문들은 그것을 뇌물로 제공할 줄 알았다. 왜 그랬을까. 따지고 보면 하나의 종교적 직책인데, 우리나라의 대부호들이 주교직 같은 자리를 놓고 거액을 내놓는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대사제직은 결코 전례적인 직책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훨씬 더 큰 것이, 막강한 권력이 걸려 있었다. 그렇기에 한나스 또는 카야파 같은 자들은 돈이 있었기에, 말하자면 금권 정치가였기에 대사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 직책을 맡게 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권력을 돈으로 만들 줄 알았다. 말하자면 정치 금권가가 되었다.

 

 

대사제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위미했는가.

1. 대사제는 유다 민족의 최고 대표였다. 큰 축일이면 그는 성의(聖衣)를 입고 가슴에는 열두 개의 보석이 박힌 흉배(胸背)를 하고 주교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성전에 들어갔다. 수석사제만이 지성소의 텅 빈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성의는 로마 지방 태수가 간직하고 있다가 거룩한 축제날 내어 줌으로써 사제들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2. 대사제는 최고의회(산헤드린)의 수석이었다. 최고 의회는 로마인들 측에서도 인정하는 최고 종교정치사법 기관이었다. 의원은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의결 정족수는 그 절반이었다. 이 점은 수난사와도 상관이 있다. 카야파가 성목요일 저녁에 급히 연 회의에는 틀림없이 믿을 만한 의원들만 소집했을 것이다. 이들을 파벌로 갈라 본다면 (대사제도 그중에 드는) 사두가이들과 (사두가이들과는 달리 교양 수준이 매우 높은 율법학자인) 바리사이들이었다. 이 두 집단은 종교적인 동기로 늘 대립하고 있었다. 이들 중 아리마태아의 요셉 같은 원로들 역시 부유층에 속했다.

유다교계에서 다른 죄과를 다루는 법정은 3심까지 따로 있었으나 신성모독에 관한 판결만은 최고의회에 유보되어 있었다. 최고의회는 성지 밖에 사는 이산 공동체들마저도 자원하여 인정하였다.

3. 이처럼 다사제는 최고 법정의 법원장이었으나 사형 판결은 스스로 내릴 수 없었다. 그것만은 로마인들이 자신에게 유보하였었다. 이 규정이 스테파노의 투석 사형에서처럼 어쩌다 지켜지지 않은 경우는 아마 지방 태수의 자리가 교체로 인한 공석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

4. 대사제는 성전 관리의 최고직에 있었다. 그러니까 수천 명 사제들의 수장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의 중대한 경제 원동력이었고 헤로데 대왕 통치 이래 쉴 새 없이 거대한 건설 현장이었다.

 그는 저 유명한 랍비 가말리엘의 아들이다. 데나르로 깎아 내리는 데 성공했다1분의 4년 이후에 힘겨운 대결 끝에 시메온 벤 가말리엘이라는 랍비가 그 비둘기 한 쌍 값을 20그리스도 약 . 으로 정하자 분노가 터졌다)데나르, 25은화 (1그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제물인 비둘기 두 마리 값을 금화 . 그것도 어찌나 뻔뻔스럽게 높게 매겼던지 상인들이 들고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가격은 대사제들이 매겼다) 희생된 짐승 등(성전 시장의 . 여기서도 대사제의 물질적인 측면이 드러난다. 상인들 하나하나가 물론 점포세를 내고 있었음은 상상이 간다. 이라는 말이 나온다한나스 아들들의 상점들년 후에도 20예수 재판 . 이라는 곳에서는 대규모 시장 영업이 번창하였다이교도 앞뜰넓디넓은 . 그러다 보니 대사제는 성전 시장을 지배하는 자였다

5. 또 하나의 거침없는 모리(謨利) 수단의 단계는 예루살렘 성전을 고유한 통화 영역으로 만든 사실이었다. 따라서 방문객과 순례자의 온갖 통화는 성전 은화(세켈)로 환전해야만 했다. 신약서만 보아도 스무 가지 종류 이상의 돈 이야기가 나온다. 로마제국에는 아주 여러 가지 동전이 있었다. 왜냐하면 태수들과 시 당국에 일부 동전 주조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놓고도 요셉 플라비우스가 어디엔가 기록했듯이 대사제들은 크게 재미를 보았다. 성전의 금전 관리에는 결국 온 세상에서 모아들이는 거액의 성전 세금도 귀속했다. 이 돈에 대한 책임 역시 대사제에게 있었다. 그런 고로 성전 재화 관리 주임은 탈무드(Talmud, 율법학자의 글과 구전과 해설을 집대성한 책)의 어느 인용에서 말하듯이, 언제나 대사제의 친척이었다. 성전 재화 자체도 또 하나의 중요 사항이었다. 바로 성전 전체가 로마 황제의 보호하에 놓여 있었고 (이와 관련된 기록판도 발견되었음) 비유다인이 그 성역에 들어가기만 해도 사형에 처한다는 금령이 있었으며 니카노르 문 앞에 있는 재화 창고 내의 성전 보물의 범접도 엄금했었다. 그래서 성전 보고에는 봉헌물뿐 아니라 거액의 돈도 들어 있었다. 고위층 나리들은 은행 업무에도 능통했다. 서기 70년에, 티누스 장군의 뜻을 어기면서, 병사들이 성전을 약탈했더니 황금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왔던지 그 시세가 반값으로 폭락했다.

6. 끝으로 대사제들은 예루살렘에서 경찰력을 행사했다. 이를 위해 성전 경비대의 우두머리로 로슈--카도슈”, 즉 성전 사령관을 두었다. 그 또한 언제나 대사제의 친척이었으며 때로는 대사제의 후보자였다. 성도(聖都) 전체에 대한 공권력은 로마인들이 부여한 것이었는데, 최고의회의 권한 때문에 때로는 예루살렘 영역 너머까지 미치기도 하였다. (최고의회 명을 받고 바오로가 다마스쿠스로 파견된 건 참조)

 

 

이렇듯, 앞서 말한 네 가문 등 예루살렘의 상류사회가 대사제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만한 여러 까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직책이 종교적으로는 이미 속이 비어 있었고 현역들은 종교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사두가이파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하면서 그 밖에는 권력과 금력의 인맥으로 일을 했다.

나자렛 예수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 지위에 위협을 주는 인물로 보였다. 그런 소견은 특히 예수가 성전에서 장사꾼을 내쫓는 사건으로 더욱 뚜렷해졌다. 여기서 예수는 그들의 큰 사업 이권을 걸고 그들의 신경을 몹시 건드렸다. 변을 당한 장사꾼들은 틀림없이 대사제들에게 가서 불평을 터뜨렸다. 예수의 개입은 매우 거칠어서 온유한 구세주상과는 사뭇 멀었다. 그리고 예수는 단순히 한 사회혁명가도 아니고 그 당시 가끔 등장하는 성전 비난가도 아니었다. 그는 구약의 예언자들의 비판적 사명과 꼭 맞는 성서 말씀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다.

 

 

네 복음사가 모두가 이 사건을 보고하고 있는데 요한이 가장 상세하다. 예수가 이 도발적 행동을 벌인 것은 단지 착취에 대한 항의로서만이 아니다. 당시 그런 항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곤 하였다. 꿈란(Qumran. 사해 서북단에 있는 폐허의 자리. 서기 2세기 초에 유다인 반란자들이 모여 지내던 터전. 1947사해문헌이 처음 발견된 곳) 집단처럼 성전 예배와는 절연한 유다인 집단들도 있었다. 그것은 아니다. 예수는 의식적으로 예언자들과 메시아적 완성을 암시하며 행동하였던 것이다.

    도둑의 소굴이라는 표현은 예레미야서 7장에 나온다. 건성으로 해도 소용없다는 말도 이어진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라고 건성으로 자꾸 되풀이해 봐야 아무 서용 없다. 하느님의 집은 신앙심으로 차고 넘쳐야 한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하는 대목을 예수는 이사야서 56장에서 취한다. 그리고 즈카르야서 1421절에서는 종말에 있을 성전에 대한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날에는 만군의 주님의 집안에 더 이상 장사꾼들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성전 상인 소탕을 통해 예수는 명백히 메시아적 완성자로서의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득권층은 경계를 하는 것이다. 이는 심연으로부터의 위험을 뜻한다. 성전 상인을 쫓아내면서 예수의 위력이 번쩍 엿보였다. 파견된 경찰력은 빈손으로 되돌아왔다, 아무도 이 사람같이 가르친 분을 본 적이 없어서... 이어지는 논쟁에서 예수의 이런 주권자로서의 말씀이 떨어진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이 논쟁은 대사제들의 마음에 사무쳤다. 그들은 예수를 고발하는 재판정에서 바로 이 말씀을 꺼내 든다.

돈과 힘과 종교적 허울과의 충돌은 시대를 넘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교회 역사의 불행한 시기에는 재력과 정치적 권력 전횡과 영신적 타락과 신학적 미숙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과연 어떠했던가. 그럴 때면 등불이 제자리에서 내려왔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는 예언자적인 인물들이 있어 약자의 수탈에 항거하며 투쟁하고 있다. 크로이틀러 주교, 아른스 추기경, 돔 헬더 카마라 등 남미의 헌신적인 빈민사목자들이 그런 분들이다. 이들은 막강한 기득권층의 사계(射界)에 들었는데 비단 세속 쪽에서뿐 아니라 때로는 교회 안으로부터도 표적이 되었다. 교회 안에서마저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결국 시혜적 자선으로 축소해 버리려는 기도(企圖)가 있었으며, 거금을 모아 부유한 나라 은행에 은닉하는 남미의 기득권층과 곧잘 어울리는 부류도 있다. 그렇게 된 이상 산꼭대기에 거대한 그리스도상을 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약의 예언직 전통을 이어 나간다면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힘쓰는 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이상 교회는 불의와 수탈에 대항하는 구원자로서의 주님의 역할을 떠맡도록 늘 힘써야 한다. 교회가 그것을 안 하면 그 도덕적 신망을 곧 잃게 된다. 그저 몇 가지 전통적 신심 행사에 머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는 기득권층에 대한 항거의 값을 목숨으로 치렀다. 온 세상이 공익과는 전혀 무관한 투기 자본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오늘, 교회는 스스로 설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이 무자비하고 반사회적인 부자들이 한심하게도 하느님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서 도박장이 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무관심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스 일가는 왜 이 사람을 없애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최고의회 앞에 열린 재판에서, 신성한 것을 탐욕과 권력욕으로 악용하는 것에 거룩한 권위로 맞서는 이 사람은 죽어야 했던 것이다.

 

-라인홀트 슈테혀

  • ?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20.04.17 14:18
    연재합니다. 1 예수와 대사제들, 2 예수와 바리사이주의, 3 본시오 빌라도와 로마인들, 4 임금들
  • profile
    김정태 2020.04.19 09:55
    "교회는 불의와 수탈에 대항하는 구원자로서의 주님의 역할을 떠맡도록 늘 힘써야 한다.
    교회가 그것을 안 하면 그 도덕적 신망을 곧 잃게 된다.
    그저 몇 가지 전통적 신심 행사에 머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는 기득권층에 대한 항거의 값을 목숨으로 치렀다.
    온 세상이 공익과는 전혀 무관한 투기 자본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오늘, 교회는 스스로 설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이 무자비하고 반사회적인 부자들이 한심하게도 ‘하느님’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서 도박장이 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무관심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눈에 확 들어오는 글이네요...^^
  • ?
    나무 2020.04.20 08:12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라고 건성으로 자꾸 되풀이해 봐야 아무 서용 없다. 하느님의 집은 신앙심으로 차고 넘쳐야 한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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