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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게 좋아 

 

어느 마을에 세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대장장이 압둘, 농부 알리, 이슬람교 사원의 사제 카림이었다.

   대장장이 압둘은 많은 주문이 들어오는데도 일은 하지 않고 늘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결코 단 하루도 성실히 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반면 알리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자신의 농장을 그 나름대로 꾸준히 힘써 가꾸며 일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으로, 가끔 다른 사람과 언쟁을 벌일 때도 있지만 정직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을의 성직자인 카림은 너무도 거룩한 사람이었다. 기쁨으로 충만한 그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사방에서 그를 만나러 왔다. 그 많은 사람들이 카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기쁨이 넘쳤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세 남자가 같은 날 나병에 걸린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한 치의 동정도 없이 그 지역의 엄격한 법에 따라, 나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그들은 즉시 강제로 가족들 곁을 떠나 격리되었다.

   그들은 서둘러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변두리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지었다. 그들은 비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작은 오두막집 안에서나마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집을 꾸몄다.

   어느 날 밤 세 사람은 똑같은 꿈을 동시에 꾸었다. 그들은 각자 꿈속에서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꿈에서 깨자마자, 그들은 서로 자기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이 너무나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꾼 꿈이 정말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시는 메시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그들은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진신 어린 기도를 열심히 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술고래인 압둘이 거짓말처럼 말짱하게 나았다. 그는 병이 다 나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하느님께서 다른 두 사람보다도 자신을 더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얻고, 즉시 자기가 살던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석 달 후에는 농부인 알리 역시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는 아직 심하게 나병을 앓고 있는 카림보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더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마을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가만! 이슬람교 사제 카림이 거룩하다는 말은 이제 보니 거짓말이고, 그저 거룩한 척했을 뿐이잖아. 카림이 정말 거룩한 사람이라면 우리 둘보다도 먼저 병이 나았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는 술고래 압둘이 그렇게 빨리 병이 나은 사실을 상기하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걸으면서도 내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주정뱅이도 기도를 드린 지 사흘 후 병이 말짱하게 나아서 돌아갔는데, 이제껏 정직하게 살아온 자신과 같은 사람이 어째서 병이 낫기까지 석 달이나 걸렸을까?’

의문이 일자, 그는 석연치 않은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도록 이슬람교 사제 카림은 병이 낫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드렸으나, 여전히 나병은 치유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의 얼굴을 보러 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그가 살고 있는 그 작은 오두막집은 차츰 고립되어 갔다. 게다가 그의 얼굴과 온몸은 보기만 해도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알리는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어째서 이슬람교 사제 카림은 지금까지 나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알리는 꿈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의 아들 알리야! 나는 네가 이슬람교 사제 카림의 숙명에 대한 생각에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째서 너보다도 인생을 더 성실히 살지 않은 나쁜 사람이 너보다도 먼저 병이 나았고, 또 어째서 너보다 거룩하게 열심히 살아온 이슬람교 사제 카림이 기막히게도 아직도 나병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러나 얘야, 이제 내가 너한테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아라.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잠시 짧은 침묵이 흐르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압둘의 기도에 빨리 응답해 주었다. 왜냐하면 그의 신앙심은 상당히 허약하기 때문이란다. 그로서는 사흘 동안 나에 대한 믿음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었던 게야. 내가 사흘이 넘어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었더라면 그는 절망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너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나는 석 달을 지연했지. 왜냐하면 너는 나에게 상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지. 그렇지만 내가 네 기도에 응답하는 것을 석 달을 더 넘겼더라면 너는 나에 대한 믿음을 잃었을 게야. 이제 이해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그 농부는 대답했다.

   “, 주님,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이슬람교 사제 카림은 어떻게 된 겁니까? 언젠가는 그가 치유가 되긴 할 건가요? 아니면 그의 기도를 영원히 들어주지 않으실 건가요?”

   그 순간 무겁고 긴 침묵이 흘렀다. 알리는 하느님이 한숨을 쉬시는 것을 들었다고 생각했으나, 정말로 한숨을 쉬셨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마침내 하느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슬람교 사제 카림의 신앙은 완전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기도를 듣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지. 너도 알다시피 그 이슬람교 사제는 나의 친구이고, 내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지. 내가 그의 기도에 응답을 하거나 안 하거나 나에 대한 그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지. 사실 나는 좀 더 오랫동안 그에게 응답하는 것을 지연하려고 한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믿음을 좀 더 깊게 자라게 해 주기 위해서지.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나에 대한 카림의 신뢰심은 전혀 나무랄 데가 없어. 내가 그를 낫게 해 주든 그렇지 않든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 그에게는 내가 모든 것이 되었거든.”

   다음 날 아침 알 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 이 말이 울리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내가 모든 것이 되었거든.”

그는 침대에 앉은 채 창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느님이 내게 모든 것이라고 여기며 사는 날이 단 하루라도 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양손을 쳐다보았다. 늘 그랬듯이 단단하게 굳은 억세고 건강한 손이었다. 순간 그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나병 환자가 아닌 것을 속상해했다.

 

- 닐 기유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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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아우구스티노신부 2019.07.10 18:25
    닐 기유메트 신부님의 책들 중에 좋은 이야기들을 발췌해서 출판한 것처럼 보입니다. 신간으로 나왔길래 그 중 이야기 하나를 나눕니다. 신부님께서는 이야기(우화)를 통해 복음의 진리와 신앙에 대해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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